넷플릭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리뷰 (퀴어, 관계, 자아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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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박상영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퀴어 감성 드라마로,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두 남성의 복잡한 사랑과 관계, 정체성의 혼란, 감정의 진폭을 진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는 단지 퀴어 로맨스를 넘어서, 오늘날 대도시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불안한 사랑, 위태로운 감정, 흐릿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감정 표현을 회피하는 시대, 무한한 선택지 속에서 확신을 갖기 어려운 관계,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이 겪는 흔들림. 「대도시의 사랑법」은 그 모든 것을 아름답고도 잔혹하게 보여준다.
1. 사랑을 정의하지 못하는 사람들 – ‘우리’라는 말의 무게
영화의 주인공 장우는 서울에서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30대 게이 남성이다. 그의 연인 지혁은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비교적 자유로운 성향의 인물이다. 두 사람은 ‘연애 중’이지만, 그 관계는 어느 누구도 분명하게 정의하지 않는다. 장우는 연인 사이에서 통상 기대하는 감정적 교류, 책임감, 미래에 대한 전망을 원하지만 지혁은 “우린 그냥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는 태도로 일관한다.
이 관계는 현대 도시 연애의 상징처럼 보인다. 성별이나 성적 지향을 떠나, 지금 이 시대 많은 이들이 마주한 연애는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는다. 사랑이란 말을 하기에는 부담스럽고, 책임지자니 무겁고, 그렇다고 놓기에는 아쉽고 외롭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유예된 채 이어지는 관계.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 불확실한 애정의 구조를 매우 현실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한다.
장우는 관계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사소한 말 한마디, 생일 챙기기, 대중 앞에서의 태도 등을 통해 ‘나를 얼마나 사랑하나’를 확인하려고 한다. 하지만 지혁은 그 모든 질문에 무표정하게 “굳이 그럴 필요 있어?”라고 대답한다. 이 모순적이고 아이러니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출렁임은 관객으로 하여금 과거의 누군가, 혹은 현재의 나를 떠올리게 만든다.
2. 서울,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 가장 멀어진 사람들
서울이라는 공간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대도시는 익명성과 개별성을 보장하지만 동시에 깊은 고립감을 동반한다. 영화는 장우의 삶을 따라가며 그 도시적 외로움을 세밀하게 드러낸다.
그의 회사는 겉보기에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지만, 여전히 무의식적인 혐오가 존재한다. 후배들이 웃으며 나누는 농담 속에는 “게이들은 뭐… 좀 유난스럽잖아”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섞여 있다.
장우는 웃으며 대화를 이어가지만, 속으로는 뜨겁게 고통받는다. 그런 순간이 반복될수록 그는 스스로를 점점 숨긴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과 내면의 진짜 감정이 괴리되고, 결국 그는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와 SNS 속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연애를 엿보며 스스로를 비교한다.
반면, 지혁은 ‘스스로에게 충실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또한 두려움 속에 살아간다. 공개적인 관계에 대한 거부,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경계는 결국 그의 불안함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그는 사랑을 피한다기보다, 사랑으로 인해 드러날 수 있는 자신의 취약함을 피하고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이처럼 ‘가까움 속의 거리’를 만들어낸다. 같은 침대에 누워 있어도 마음은 멀고,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를 읽지 못하는 사랑. 이 영화가 서울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바로 그 현대적 사랑의 단절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3. 퀴어를 말하지만, 모두의 이야기 – 누구나 외롭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 서사이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의 감정에 닿는다. 누군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두렵고, 누군가는 상처받을까봐 애초에 사랑하지 않으려 한다. 이 영화는 그런 회피, 두려움, 용기 없음, 그리고 때늦은 후회를 절묘하게 엮는다.
장우는 연애를 하면서도 늘 외롭다. 지혁과 보내는 시간은 너무 짧고, 그 속에 있는 진심은 너무 불확실하다. 그래서 그는 때때로 집착하고, 때때로 상대를 밀어낸다. 그 모습은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과, 상처받기 싫다는 두려움이 충돌하는 지점. 이 영화는 그 치열한 감정의 전투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또한, 장우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한다. “이렇게까지 애써야 하나?”, “나는 왜 늘 더 사랑하는 쪽일까?”, “왜 나만 이렇게 무너질까?” 이 자기 질문들은 결국 ‘자기혐오’의 형태로 이어지고, 이는 연애에 그대로 투영된다. 그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 그 누구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메시지가 영화 속 깊이 새겨져 있다.영화적 연출과 배우의 감정선 – 말하지 않아도 아는 슬픔
감독은 이 감정선을 말보다 ‘침묵’으로 풀어낸다. 주인공들의 대사는 최소화되어 있고, 눈빛과 손짓, 앉은 자세와 걷는 속도까지 모든 행동에서 감정이 흘러나온다. 특히 장우가 혼자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 불 꺼진 방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누구나 느껴봤을 감정의 슬픔을 절절하게 그려낸다.
이제훈은 장우 역을 맡아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사랑 앞에서는 애틋하고, 외로움 앞에서는 취약하고, 상처 앞에서는 무너지는 연기는 단순히 ‘연기 잘한다’는 평을 넘는다. 그는 말 없이도 관객에게 감정을 전달한다. 장동윤 역시 지혁 역할로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미묘한 내면의 흔들림을 잘 표현했다. 무책임해 보이지만 동시에 상처받기 싫은 본능, 사랑하고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고통을 사실적으로 구현해낸다.